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토 고몬 (문단 편집) == 실제 == 실제로 암행어사 짓을 하긴 했지만, 일화와 달리 전국 탐방을 하진 못했다. 애초에 미토 번의 번주였던 중임인 만큼, 현역 시절은 물론이고 은퇴하고 나서도 워낙 중요인물이다보니 멀리 가봤자 자신에게 배정된 미토(水戸, 오늘날의 [[이바라키현]])까지가 전부였고,[* [[미토 번]]은 그 애매하게 높은 이름값탓에 수도인 에도에 상시 머물러야 해서 대리인을 통해 대신 관리하고 있었다.] 그 미토조차 한국으로 비유하면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나간 격이었다. 그 외 현들은 당연히 못가고 주로 부하들이나 감찰역으로 보냈다. 참고로 미토 번(藩)이라 하면 기이(紀伊, 오늘날 [[와카야마현]]), 오와리(尾張, 오늘날의 [[아이치현]])와 함께 [[고산케]](御三家)를 이루는 친번(親藩)으로, 한마디로 말하자면 '''엄청 높으신 분'''이었다. 실제로 법적으로 쇼군 계승권까지 가진 가문이며, 미토 고몬또한 쇼군 계승권자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고산케 3가 중에선 서열 3위인데다가 이에야스부터가 '보좌역에 충실해라' 정도의 유언을 남긴 탓에 계승 서열이 밀려 이 가문에서 쇼군이 나올거라 예상한 인물은 없었으나, 의외로 제일 건실하게 버틴 가문도 미토 가였다. 정작 [[에도 막부]]가 종식될 때까지 고산케 중 쇼군을 배출하지 못한 가문은 서열 1위였던 오와리 도쿠가와 쪽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한 세대도 남아가 끊긴적이 없었다고 하며, 오히려 남아 복이 넘쳐서 남아를 낳지 못한 다른 가문에서 대를 잇기 위해 양자로 입양해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상술했듯 본명은 도쿠가와 미츠쿠니이며, 미토 고몬은 일종의 관직명에 가깝다. '미토'는 미토 번주라는 의미고, 고몬(黃門)은 [[중납언]](츄나곤: 中納言) 관직을 가진 사람을 중국식으로 부른 명칭으로 중국의 '[[황문시랑]](黄門侍郎)'이라는 관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풀어쓰자면 '미토 번의 번주이자 츄나곤(水戸中納言)'을 지낸 사람'을 뜻하는 의미로, 미토 번 번주중 이런 '미토 고몬'이었던 인물은 미쓰쿠니 외에도 미쓰쿠니의 아버지이자 초대 미토 번주인 [[도쿠가와 요리후사]]부터 시작해서 [[도쿠가와 쓰나에다]](3대 번주), [[도쿠가와 하루모리]](6대), [[도쿠가와 나리노부]](8대), [[도쿠가와 나리아키]](9대)[* 도쿠가와 막부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친아버지다. 정치적으로는 번정개혁을 성공시킨 명군이자 막부 말 [[히토츠바시파]]를 주도하여 [[이이 나오스케]]와 대립한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한편으론 호색한으로도 유명해서 선대 번주였던 형의 정실부인의 시녀나 자기 며느리를 건드렸다는 괴담이 일본 전국에 떠돌 정도로 악명높았으며 [[오오쿠]]의 낭비를 비난하는 한편 오오쿠 여성들에게 [[성희롱]]적인 발언을 일삼았던 탓에 오오쿠 여성들의 [[증오]]를 한몸에 받아 이후 아들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쇼군 계승경쟁에 악영향을 끼쳤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요시노부 외에도 자식이 엄청나게 많았으며 그 덕분에 요시노부의 이복 형제들의 상당수는 다른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 번주직을 계승했는데, 그 중에는 히토츠바시와 함께 [[고산쿄]]의 일원이었던 시미즈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쿠가와 요시아츠]](10대) 등등 6명은 더 있었다. 즉 '미토 고몬'은 총 7명이 있는 셈. 하지만 현대에 들어선 '태합(타이코: 太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있는 게 아니었는데도 히데요시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이는 것처럼 미토 고몬이란 단어 역시 '도쿠가와 미츠쿠니'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한국]]으로 치면 '[[충무공]]'하면 흔히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는 거나 '[[대원군]]'하면 [[흥선대원군]]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예다. 부쇼군이라 칭해진 것은 실제로 그가 부쇼군이란 직위에 있었기 때문은 아니며 이는 미토 번주의 별칭이다. 미토 번은 [[에도]]와 붙어 있었기 때문에 미토 번주는 에도에 상주하며 쇼군을 보좌해야 했다. 때문에 미토 번주는 막부 정계에서 위상이 대단했었고 그 때문에 부쇼군이란 별칭이 붙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